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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 노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심화] - 5. 고대국가 (백제, 신라)

by 더퍼플베리 202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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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제

  고대국가의 전성기를 가장 먼저 이룬 나라

  4C


수도 : 한성(Seoul) → 졸본 → 사비 (도읍을 2번 옮김)


온조
  • 고주몽의 둘째 아들임 (고주몽의 첫째 아들 비류는 미추홀 쪽으로 가서 나라를 세움)
  • 온조는 한강유역에서 백제를 건국함 
고이왕
  • 백제의 기틀을 세우고 개혁을 했던 왕
  • 관등(관리들의 서열)을 만들고 관복 색깔을 정해 왕을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시켜나감 (율령 비슷한 것을 만들었음)
  • 마한지역의 목지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삼한 중 힘이 가장 쎈 나라였음
  • 고이왕 때 그 강한 목지국을 정복함
  • 백제의 시스템을 중앙집권적으로 만든 왕
근초고왕 (4C)
  • 백제의 정복군주였음 (고구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포스작렬왕)
  •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죽이고 고구려를 정복함
  • 외국쪽으로 진출, 교류 활발했음 : 요서, 규슈(칠지도)
  • 남쪽의 마한을 완전히 정복함
  • 근초고왕의 무덤은 잠실 석촌동쪽에 있음, 석촌동 고분군의 경우 한 변의 길이가 50m에 달함(근초고왕의 무덤이 아닐까?)
침류왕
  • 동진에서 불교를 수용 (고구려는 소수림왕때 중국 전진에서 불교를 수용함)

  • 5C는 고구려 시대였음
  • 광개토대왕은 한강 이북, 아들 장수왕은 한강 이남으로 진출함으로 백제를 엄청 괴롭게 함
  • 역사에는 백제왕이 무릎을 꿇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함
  • 장수왕때 평양천도를 하자 백제는 더 미칠것 같았음 (옆에서 신라도 스트레스를 받았음) → 결국 백제와 신라가 둘이 손잡고 나제동맹을 하게 됨
  • 나제동맹(1차) : 신라(눌지왕)와 백제(비유왕)이 동맹을 맺었으며 이를 공수동맹(같이 손을 잡고 고구려를 막기위한 동맹)이라고 함 
  • 한편 고구려는 평양천도이후 더 밀고 내려와서 장수왕때는 한강지역을 확보함
  • 즉,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고 백제왕 개로왕을 죽임 (고국원왕에 대한 복수를 한거임)
  • 외교의 달인이었던 장수왕이 있는 한 백제는 북위에 지원요청을 할 수 없었다고 함
  • 결국 백제는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수도를 옮기게 됨
  • 공주의 공산성을 둘러보면 당시 얼마나 급박하게 수도를 천도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음 (정신없이 내려오느라 제대로 된 도읍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
  • 그 이후 다시 나제동맹을 또 맺음
  • 나제동맹(2차) : 신라(소지왕)와 백제(동성왕)이 동맹을 맺었는데 이때는 아예 결혼동맹을 함

무령왕
  • 웅진천도로 왕이 쫓겨서 내려온 상황이니 왕빨(king빨)이 안섰음
  • 그러다보니 귀족들이 왕알기를 우습게 알고 막 무시했음
  • 그때 무령왕이 백제의 특수행정구역인 ★ 22담로에 왕족들을 파견함으로 왕권을 다지기 시작했음 (귀족 견제 목적이었음)
  • 백제는 교류의 나라였음 → 중국남조와 일본과 교류를 했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음 → 무령왕릉(벽돌무덤)을 열었더니 관은 made in Japen이요 무덤양식은 made in China였음 → 무덤 하나에 동북아의 문화를 담아놓은듯 했음 → 즉, 적극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백제는 문화강국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음
  • 거의 죽어가던 백제를 다시 끌어올려 살려놓았음
성왕
  • 백제의 부흥 (제2의 전성기)을 위해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김
  • 부여 부소산성 낙화암(사비시대) 일대는 지금도 발굴작업이 일어나고 있음 (관북리유적지)
  • 사비는 성왕의 계획도시였음
  • 또한 백제가 부여로부터 출발했음을 착안해서 국호를 남부여로 바꿈 → 고구려도 부여출신이고 백제도 부여출신이지만 우리가 적통이라는 의미로 남부여라 칭함
  • 전국 지방 행정조직을 5부와 5방으로 나누었음
  • 백제의 꿈은 다시 한강을 차지하는 것이었음 → 그래서 나제동맹때 한강을 다시 수복하기로 함 → 결국 성공! (6C 고구려가 힘이 약해진 시기)
  • 그런데 말입니다.... 역사에 영원한 우방이나 적국은 존재하지 않는 법 → 나제동맹을 백여년동안 유지했던 신라 진흥왕이 백제의 뒷통수를 치고 배신을 때림 
  • 성왕이 느꼈던 배신감 어쩔?
  • 결국 백제와 신라는 동맹관계를 끊고 치열하게 싸움 → 관산성 전투 → 초반에는 백제가 나쁘지 않았다고 함 → 성왕의 아들이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는데 이기고 있는 싸움이라고 판단한 성왕이 응원차 방문함 → 그러다 신라의 매복조에 걸림 → 결국 성왕이 목이 잘려 죽게됨 (혹자는 성왕의 목을 신라 계단 밑에 파묻었다고 함. 신라인들이 밟고 다니라고) → 절친이 철천지 웬수가 된 상황임
무왕
  • 서동이 바로 무왕임 (신라의 선화공주를 꼬셨던 왕)
  • 서동요가 겁나 야함 → 헌데 이 노래를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 부르게 한거임 (쉽게 말해 SNS에다가 루머를 퍼트려서 선화공주가 쫓겨나게 만들고 결국 결혼하게 된다는 스토리임)
  • 익산프로젝트 : 마치 조선시대때 정조가 수도 한양을 두고 수원 화성을 건설했듯 무왕도 수도 부여를 두고 또 하나의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곳이 바로 익산임 (익산 미륵사지 동탑, 왕궁리 유적지)
의자왕
  • 무왕의 아들(선화공주의 아들일 수 있다는 루머가 있다고 함)
  • 백제의 마지막 왕
  • 의자왕의 3천 궁녀설 : 일단 부여 부소산성의 낙화암에 올라가보면 상당히 좁음. 3천 궁녀 올라갈 수 없음. 게다가 흥청망청 놀던 연산군때 궁녀가 고작 육 백명이었는데 고대에 3천명이라? 백제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려다보니 이야기가 와전된 거임
  • 의자왕이 중국에 끌려갈 때 백제의 백성들이 나와서 대성통곡 했다는 기록있음. 어쩌면 의롭고 자애로왔을수도...

  • 대야성(지금의 합천) 전투 : 642년은 역사상 삼국시대의 분수령이 되는 시기임. 당시 신라의 실세는 김춘추였음. 김춘추가 가장 사랑하는 딸과 사위가 대야성 성주였음. 따라서 백제는 대야성 전투를 승리한 후 성주를 바로 처형함으로 백제 성왕이 신라 매복으로 죽은 것에 대한 복수를 함 → 한편 고구려에서는 642년에 연개소문의 쿠데타가 일어남 →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실세가 됨 → 딸과 사위를 잃은 김춘추가 바로 연개소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함 → 연개소문이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넘겨주면 도와주겠다고 튕김 → 김춘추가 거절하자 감옥에 가둠 → 감옥에서 몰래 탈옥한 김춘추가 바로 당나라 당태종을 찾아감 → 그러면서 나당연합군이 만들어지게 된거임
  • 나당연합군 :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치려면 수군이었던 당나라는 부여쪽으로, 신라는 경주에서 출발해서 부여쪽으로 가야 백제를 칠 수 있음 → 헌데 재미있는 것이 당나라는 인천쪽으로 신라 김유신 부대는 백제를 통과해서 경기도 쪽으로 출격함 → 이는 누가봐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치러가는 모양새였음 → 헌데 당나라와 신라는 경기도에서 만나 방향을 완전히 꺾어 백제쪽으로 치고 들어옴 → 백제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군대에 무너져버린거임
  • 계백장군 : 5만명의 김유신 부대를 막으라고 했을 때 계백은 죽음을 직감함 → 계백에게는 5천명의 결사대가 전부였음 → 결국 계백은 의자왕의 명을 받고 바로 집으로 가서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살해함 → 그리고 5천 결사대 앞에서 그들과 자신이 마지막을 보내겠다고 선언함 →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과 김유신이 만나서 싸움 → 그런데 웬열? 계백이 이김 → 5만명이 5천명을 못 이길까보냐? 안일한 생각이던 신라가 정신차리고 몇 차례의 패전 끝에 전력을 다해 사비성을 함락시킴 → 당시 웅진성으로 피신갔던 의자왕은 거기서 사로잡히게 됨

  • 660년에 나당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킴 (700여년)
후기 백제 
  • 흑치상지, 도침, 복신 → 백제의 부흥운동을 이끔
  • 흑치상지 : 임존성에서 당나라의 군대 소정방 부대를 무너뜨림
  • 백강전투 : 일본이 백제와 친했음 → 백제를 구하겠다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배를 보내서 한.중.일이 한꺼번에 싸웠던 전투가 백강전투였음 → 헌데 당나라 배는 단단했고 일본 배는 약했음 →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백제와 일본은 패하게 됨 →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정권교체가 일어났다고 함
  • 도침, 복신 :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도침과 복신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했음

2. 신라

지역적 특징 때문에 고립되어 있어서 발전이 가장 더디고 느렸음

박혁거세
  •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는 사로국 건국
  • 박(혁거세) → 석(탈해) →김(알지)가 돌아가면서 리더가 되기로 했음
  • 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음 :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 5C (400년) 신라에 큰 위험이 닥침 → 왜가 쳐들어 옴 → 경주.신라가 멸망 직전까지 감
  • 당시 고구려가 가장 전성기였음 → 신라는 광개토대왕에게 S.O.S를 쳤음 → 고구려가 왜를 물리쳐주고 왕 나와보라고 함 → 그랬더니 박씨, 석씨, 김씨가 왕이라고 나옴 → 고구려 할많하안 → 왕을 김씨로 정하고 세습하게 함
  • 내물 마립간 이후 김씨로 왕위 세습 시작됨

  •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 때 계속 남하해 옴 → 나(눌지왕)제(소지왕)동맹
지증왕
  • 개혁군주
  • 6C에 와서 왕이라는 이름과 신라라는 이름을 사용함
  • 우산국(울릉도) 정복 : 이사부 장군
  • 우경을 장려 :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농사법
  • 동시전 : 동쪽 시장을 관리 감독하는 관청을 만듬
  • 순장 금지
법흥왕
  • 개혁군주
  •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함 : 건양(을미개혁)과 헷깔리지 말기를!!
  • 율령(17관등)을 반포함
  • 병부 편성 : 국방부의 개념
  • 골품제를 정비 : 골품제의 리더인 상대등을 배치함 
  • 불교를 공인함 : 이차돈의 순교 → 워낙 지역특색이 보수적이다보니 불교를 공인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음 → 이차돈을 불러 희생하게 함 → 이차돈의 목을 칠때 흰색 피가 튀면서 하늘에는 꽃가루 흩날림 → 사람들 불심이 마구마구 생김
  • 금관가야를 멸망시킴 :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의해 쇠퇴했지만 멸망은 신라의 법흥왕이 시켰음
진흥왕
  • 관산성 전투 : 배신을 때려서 백제 성왕을 죽임. 성왕(50대)의 뒷통수를 칠 때 19살이었음
  • 한강을 차지함 → 당항성 (당나라로 향하는 성)
  • 단양 적성비 : 단양에 신라 비석도 있고 고구려 비석도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했다는 의미임
  • 순수비 : 순회하면서 비석을 꽂았다고 함 (북한산 순수비→ 추사 김정희가 밝혀냄)
  • 화랑도 개편
  • 국사 편찬 : 거칠부 
  • 대가야 멸망

  • 7C 위기를 맞이하게 됨
  • 백제 무왕의 압박, 의자왕의 압박, 대야성 전투등으로 위기를 맞이함

태종 무열왕
  •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선덕여왕의 조카였음 (최초의 진골출신 왕)
  • 김유신(금관가야쪽 사람, 김해김씨)과 손을 잡음
  •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킴
문무왕
  • 무열왕의 아들임
  • 나당연합군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킴
  • 이후 당나라가 자꾸 욕심을 부리자 나당전쟁을 통해 매소송 전투, 기벌포 전투를 위해 삼국을 통일하게 됨
  • 문무대왕릉 :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호국) 함
  • 문무왕때 삼국통일을 이루어냄
  • 문무왕의 아들이 신문왕임

본 포스팅은 최태성 선생님의 EBS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심화] 강의를 개인공부 목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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