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관리들의 서열)을 만들고 관복 색깔을 정해 왕을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시켜나감 (율령 비슷한 것을 만들었음)
마한지역의 목지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삼한 중 힘이 가장 쎈 나라였음
고이왕 때 그 강한 목지국을 정복함
백제의 시스템을 중앙집권적으로 만든 왕
근초고왕 (4C)
백제의 정복군주였음 (고구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포스작렬왕)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죽이고 고구려를 정복함
외국쪽으로 진출, 교류 활발했음 : 요서, 규슈(칠지도)
남쪽의 마한을 완전히 정복함
근초고왕의 무덤은 잠실 석촌동쪽에 있음, 석촌동 고분군의 경우 한 변의 길이가 50m에 달함(근초고왕의 무덤이 아닐까?)
침류왕
동진에서 불교를 수용 (고구려는 소수림왕때 중국 전진에서 불교를 수용함)
5C는 고구려 시대였음
광개토대왕은 한강 이북, 아들 장수왕은 한강 이남으로 진출함으로 백제를 엄청 괴롭게 함
역사에는 백제왕이 무릎을 꿇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함
장수왕때 평양천도를 하자 백제는 더 미칠것 같았음 (옆에서 신라도 스트레스를 받았음) → 결국 백제와 신라가 둘이 손잡고 나제동맹을 하게 됨
나제동맹(1차) : 신라(눌지왕)와 백제(비유왕)이 동맹을 맺었으며 이를 공수동맹(같이 손을 잡고 고구려를 막기위한 동맹)이라고 함
한편 고구려는 평양천도이후 더 밀고 내려와서 장수왕때는 한강지역을 확보함
즉,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고 백제왕 개로왕을 죽임 (고국원왕에 대한 복수를 한거임)
외교의 달인이었던 장수왕이 있는 한 백제는 북위에 지원요청을 할 수 없었다고 함
결국 백제는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수도를 옮기게 됨
공주의 공산성을 둘러보면 당시 얼마나 급박하게 수도를 천도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음 (정신없이 내려오느라 제대로 된 도읍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
그 이후 다시 나제동맹을 또 맺음
나제동맹(2차) : 신라(소지왕)와 백제(동성왕)이 동맹을 맺었는데 이때는 아예 결혼동맹을 함
무령왕
웅진천도로 왕이 쫓겨서 내려온 상황이니 왕빨(king빨)이 안섰음
그러다보니 귀족들이 왕알기를 우습게 알고 막 무시했음
그때 무령왕이 백제의 특수행정구역인 ★ 22담로에 왕족들을 파견함으로 왕권을 다지기 시작했음 (귀족 견제 목적이었음)
백제는 교류의 나라였음 → 중국남조와 일본과 교류를 했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음 → 무령왕릉(벽돌무덤)을 열었더니 관은 made in Japen이요 무덤양식은 made in China였음 → 무덤 하나에 동북아의 문화를 담아놓은듯 했음 → 즉, 적극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백제는 문화강국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음
거의 죽어가던 백제를 다시 끌어올려 살려놓았음
성왕
백제의 부흥 (제2의 전성기)을 위해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김
부여 부소산성 낙화암(사비시대) 일대는 지금도 발굴작업이 일어나고 있음 (관북리유적지)
사비는 성왕의 계획도시였음
또한 백제가 부여로부터 출발했음을 착안해서 국호를 남부여로 바꿈 → 고구려도 부여출신이고 백제도 부여출신이지만 우리가 적통이라는 의미로 남부여라 칭함
전국 지방 행정조직을 5부와 5방으로 나누었음
백제의 꿈은 다시 한강을 차지하는 것이었음 → 그래서 나제동맹때 한강을 다시 수복하기로 함 → 결국 성공! (6C 고구려가 힘이 약해진 시기)
그런데 말입니다.... 역사에 영원한 우방이나 적국은 존재하지 않는 법 → 나제동맹을 백여년동안 유지했던 신라 진흥왕이 백제의 뒷통수를 치고 배신을 때림
성왕이 느꼈던 배신감 어쩔?
결국 백제와 신라는 동맹관계를 끊고 치열하게 싸움 → 관산성 전투 → 초반에는 백제가 나쁘지 않았다고 함 → 성왕의 아들이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는데 이기고 있는 싸움이라고 판단한 성왕이 응원차 방문함 → 그러다 신라의 매복조에 걸림 → 결국 성왕이 목이 잘려 죽게됨 (혹자는 성왕의 목을 신라 계단 밑에 파묻었다고 함. 신라인들이 밟고 다니라고) → 절친이 철천지 웬수가 된 상황임
무왕
서동이 바로 무왕임 (신라의 선화공주를 꼬셨던 왕)
서동요가 겁나 야함 → 헌데 이 노래를 지금의 초등학생들에게 부르게 한거임 (쉽게 말해 SNS에다가 루머를 퍼트려서 선화공주가 쫓겨나게 만들고 결국 결혼하게 된다는 스토리임)
익산프로젝트 : 마치 조선시대때 정조가 수도 한양을 두고 수원 화성을 건설했듯 무왕도 수도 부여를 두고 또 하나의 도시를 건설했는데 그곳이 바로 익산임 (익산 미륵사지 동탑, 왕궁리 유적지)
의자왕
무왕의 아들(선화공주의 아들일 수 있다는 루머가 있다고 함)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3천 궁녀설 : 일단 부여 부소산성의 낙화암에 올라가보면 상당히 좁음. 3천 궁녀 올라갈 수 없음. 게다가 흥청망청 놀던 연산군때 궁녀가 고작 육 백명이었는데 고대에 3천명이라? 백제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려다보니 이야기가 와전된 거임
의자왕이 중국에 끌려갈 때 백제의 백성들이 나와서 대성통곡 했다는 기록있음. 어쩌면 의롭고 자애로왔을수도...
대야성(지금의 합천) 전투 : 642년은 역사상 삼국시대의 분수령이 되는 시기임. 당시 신라의 실세는 김춘추였음. 김춘추가 가장 사랑하는 딸과 사위가 대야성 성주였음. 따라서 백제는 대야성 전투를 승리한 후 성주를 바로 처형함으로 백제 성왕이 신라 매복으로 죽은 것에 대한 복수를 함 → 한편 고구려에서는 642년에 연개소문의 쿠데타가 일어남 → 연개소문이 고구려의 실세가 됨 → 딸과 사위를 잃은 김춘추가 바로 연개소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함 → 연개소문이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유역을 넘겨주면 도와주겠다고 튕김 → 김춘추가 거절하자 감옥에 가둠 → 감옥에서 몰래 탈옥한 김춘추가 바로 당나라 당태종을 찾아감 → 그러면서 나당연합군이 만들어지게 된거임
나당연합군 : 신라와 당나라가 백제를 치려면 수군이었던 당나라는 부여쪽으로, 신라는 경주에서 출발해서 부여쪽으로 가야 백제를 칠 수 있음 → 헌데 재미있는 것이 당나라는 인천쪽으로 신라 김유신 부대는 백제를 통과해서 경기도 쪽으로 출격함 → 이는 누가봐도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치러가는 모양새였음 → 헌데 당나라와 신라는 경기도에서 만나 방향을 완전히 꺾어 백제쪽으로 치고 들어옴 → 백제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군대에 무너져버린거임
계백장군 : 5만명의 김유신 부대를 막으라고 했을 때 계백은 죽음을 직감함 → 계백에게는 5천명의 결사대가 전부였음 → 결국 계백은 의자왕의 명을 받고 바로 집으로 가서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살해함 → 그리고 5천 결사대 앞에서 그들과 자신이 마지막을 보내겠다고 선언함 →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과 김유신이 만나서 싸움 → 그런데 웬열? 계백이 이김 → 5만명이 5천명을 못 이길까보냐? 안일한 생각이던 신라가 정신차리고 몇 차례의 패전 끝에 전력을 다해 사비성을 함락시킴 → 당시 웅진성으로 피신갔던 의자왕은 거기서 사로잡히게 됨
660년에 나당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킴 (700여년)
후기 백제
흑치상지, 도침, 복신 → 백제의 부흥운동을 이끔
흑치상지 : 임존성에서 당나라의 군대 소정방 부대를 무너뜨림
백강전투 : 일본이 백제와 친했음 → 백제를 구하겠다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배를 보내서 한.중.일이 한꺼번에 싸웠던 전투가 백강전투였음 → 헌데 당나라 배는 단단했고 일본 배는 약했음 →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서 백제와 일본은 패하게 됨 →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정권교체가 일어났다고 함
도침, 복신 :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도침과 복신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했음
2. 신라
지역적 특징 때문에 고립되어 있어서 발전이 가장 더디고 느렸음
박혁거세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는 사로국 건국
박(혁거세) → 석(탈해) →김(알지)가 돌아가면서 리더가 되기로 했음
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음 : 거서간 → 차차웅 → 이사금
5C (400년) 신라에 큰 위험이 닥침 → 왜가 쳐들어 옴 → 경주.신라가 멸망 직전까지 감
당시 고구려가 가장 전성기였음 → 신라는 광개토대왕에게 S.O.S를 쳤음 → 고구려가 왜를 물리쳐주고 왕 나와보라고 함 → 그랬더니 박씨, 석씨, 김씨가 왕이라고 나옴 → 고구려 할많하안 → 왕을 김씨로 정하고 세습하게 함
내물 마립간 이후 김씨로 왕위 세습 시작됨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 때 계속 남하해 옴 → 나(눌지왕)제(소지왕)동맹
지증왕
개혁군주
6C에 와서 왕이라는 이름과 신라라는 이름을 사용함
우산국(울릉도) 정복 : 이사부 장군
우경을 장려 :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농사법
동시전 : 동쪽 시장을 관리 감독하는 관청을 만듬
순장 금지
법흥왕
개혁군주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함 : 건양(을미개혁)과 헷깔리지 말기를!!
율령(17관등)을 반포함
병부 편성 : 국방부의 개념
골품제를 정비 : 골품제의 리더인 상대등을 배치함
불교를 공인함 : 이차돈의 순교 → 워낙 지역특색이 보수적이다보니 불교를 공인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음 → 이차돈을 불러 희생하게 함 → 이차돈의 목을 칠때 흰색 피가 튀면서 하늘에는 꽃가루 흩날림 → 사람들 불심이 마구마구 생김
금관가야를 멸망시킴 :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의해 쇠퇴했지만 멸망은 신라의 법흥왕이 시켰음
진흥왕
관산성 전투 : 배신을 때려서 백제 성왕을 죽임. 성왕(50대)의 뒷통수를 칠 때 19살이었음
한강을 차지함 → 당항성 (당나라로 향하는 성)
단양 적성비 : 단양에 신라 비석도 있고 고구려 비석도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했다는 의미임
순수비 : 순회하면서 비석을 꽂았다고 함 (북한산 순수비→ 추사 김정희가 밝혀냄)
화랑도 개편
국사 편찬 : 거칠부
대가야 멸망
7C 위기를 맞이하게 됨
백제 무왕의 압박, 의자왕의 압박, 대야성 전투등으로 위기를 맞이함
태종 무열왕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선덕여왕의 조카였음 (최초의 진골출신 왕)
김유신(금관가야쪽 사람, 김해김씨)과 손을 잡음
나당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킴
문무왕
무열왕의 아들임
나당연합군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킴
이후 당나라가 자꾸 욕심을 부리자 나당전쟁을 통해 매소송 전투, 기벌포 전투를 위해 삼국을 통일하게 됨
문무대왕릉 : 죽어서까지 나라를 지키겠다고 (호국) 함
문무왕때 삼국통일을 이루어냄
문무왕의 아들이 신문왕임
본 포스팅은 최태성 선생님의 EBS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심화] 강의를 개인공부 목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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